군형법 제92조의6(이른바 군형법상 ‘추행죄’)은 ‘군인 또는 준군인’ 상호 간에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는 경우 형사처벌하는 조항입니다. 성폭력 처벌 조항과 별도로 동성 간 합의한 성적 행위를 ‘추행’ 즉 추한 행위로 보고 처벌하는 조항으로 ‘동성애 처벌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 조항은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할 뿐 아니라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 평등권을 침해하므로 반드시 폐지해야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해 유엔 국가별정례인권검토(UPR), 사회권위원회, 자유권위원회 등 국제사회에서도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를 꾸준히 권고했습니다.
군대 내 동성 간 성폭력은 군형법에 별도로 규정된 강간죄(제92조), 강제추행죄(제92조의3) 등 성폭력 처벌 조항으로 처벌합니다. 형법과 성폭력특별법으로도 처벌할 수 있습니다.
반면 군형법 제92조의6은 강제성이 없는 동성 군인 간 합의한 성적 행위를 처벌합니다. 이 조항은 오히려 군대 내 동성 간 성폭력을 은폐하고 가해자를 성폭력 처벌 조항보다 가볍게 처벌하는 데 이용되거나 심지어는 성폭력 피해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를 함께 처벌하는 등 심각한 2차 피해를 일으켜 왔습니다.
이성 군인 간 합의한 성적 행위는 형사처벌하지 않으며, 군 기강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에는 군인사법상 징계처분이나 전역 조치 등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성 군인 간 합의한 성적 행위는 군대 밖에서 이루어졌거나 군 기강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에도 형사처벌합니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아무리 군대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이성 군인 간 성적 행위처럼 징계처분으로도 규제할 수 있음에도 동성 군인 간 성적 행위만을 범죄로 규정해 형사처벌하는 차별적인 법 조항입니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오로지 동성 간 성적 행위를 했는지만 문제 삼고 처벌합니다. 동성 군인 간 합의한 성적 행위로 인해 부대 업무에 차질이 생겼는지, 명령 체계에 문제가 발생했는지, 부대의 기강이 무너졌는지, 전투력이 약화됐는지 등은 판단하지 않습니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엄격한 군 기강이 요구되는 파병부대 사무실에서 이성 장교가 성행위를 한 사례에서는 군 기강이 크게 침해됐음에도 징계만으로 그쳤습니다. 반면, 원래 아는 사이로서 서로 다른 부대에 소속된 동성 병사가 휴가 중 집에서 성행위를 한 사례는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이 조항의 본질은 성폭력이 아닌 동성 간 합의한 성적 행위를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동성애 혐오입니다.
혹시 ‘남성은 강력한 법적제재가 없으면 성욕을 조절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는 오히려 남성이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어온 잘못된 통념입니다.
군형법 제92조의6을 폐지하면 남성 간 성적 행위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는 편견에 불과합니다. 해외 사례와 연구를 보더라도 아무런 실증적 근거가 없습니다. 한편, 남성 간 성폭력은 여전히 성폭력 처벌 조항으로 형사처벌할 수 있고, 남성 군인 간 성적 행위가 문제되는 경우에는 징계처분 등으로 규제할 수 있습니다.
‘동성애자는 성적으로 문란할 것’이라는 생각도 잘못된 편견입니다. 또한, HIV/AIDS는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병이며,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감염되는 질병이 아닙니다. 오히려 동성애자 군인들은 동성애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군대 문화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하고, 군형법 제92조의6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받고 있습니다.
현재 군인사법 등 관련 법령에 따르면, 동성애자의 군 복무를 금지하는 규정은 없고, 국방부 훈령인 「부대관리훈령」에서는 ‘동성애자 병사의 인권을 보호하고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혐오와 에이즈 공포를 조장하는 비합리적인 선동을 넘어서 동성애자 군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군형법 제92조의6을 폐지해야 합니다.
합헌 결정이 있었다고 군형법 제92조의6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위헌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6명)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2002년에는 재판관 2명, 2011년과 2016년에는 재판관 4명이 위헌의견이었습니다. 합헌 결정 이후에도 이 조항의 위헌성을 묻는 위헌법률심판제청과 헌법소원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폐지된 ‘낙태죄’도 2012년에는 합헌 결정이 있었지만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이 선고됐습니다. 한편,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했더라도 소수의견인 위헌의견을 존중하여 입법을 통해 법을 개정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 결정과 상관없이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3년 국회는 군형법 제92조의6을 개정하여 남성 간 성행위를 비하하는 용어 ‘계간 기타 추행’을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상관없이 적용할 수 있는 용어 ‘항문성교 그 밖의 추행’으로 대체했습니다, 그로 인해 이 조항의 처벌 대상은 더욱 모호해졌습니다. 예컨대 이성 간 ‘항문성교’도 처벌하는지, 여성 간 성적 행위는 ‘그 밖의 추행’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합니다. 실제로는 여전히 남성 간 성적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동성애 처벌법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합의한 성적 행위를 처벌한다는 본질적인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용어를 쓰더라도 합의한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이상, 법 개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법 자체를 폐지해야 합니다.
A9. 미국에서 이른바 ‘소도미법’이라 불렸던 「통일군사법전(UCMI)」 제125조 중 동성 간 합의한 성적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은 이미 폐지됐습니다. 해당 조항은 2003년 미국연방대법원이 ‘소도미법’은 위헌이라고 선고한 이후부터 실질적으로 적용이 중단된 상태였고, 2013년 통과된 국방수권법(NDAA)에서 삭제됐습니다.
오히려 미군은 2011년 “Don’t Ask, Don’t Tell(성정체성을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 정책을 폐지하고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도 차별 없이 군 복무를 할 수 있게 변화해왔습니다. 지금은 동성 군인 부부와 커플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등 성소수자 인권보장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는 인권증진을 위해 조속히 추진해야 할 과제입니다.
특히 2017년 ‘육군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은 군대가 군형법 제92조의6을 악용해 성소수자 군인을 표적 수사하고 형사처벌, 강제전역 등 불이익을 줄 수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성희롱, 혐오 발언, 아웃팅 협박 등 숱한 인권침해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조항을 적용하더라도 거의 기소유예, 선고유예, 집행유예 등으로 실질적인 처벌은 하지 않고 있으나, 언제든지 이 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는 상징적 위험성은 성소수자의 인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지난 5월 24일은 ‘육군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 피해자 A대위가 1심 유죄 판결을 선고받은 지 4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군형법 제92조의6을 폐지해야 합니다.